안철수와 문재인 중 한 명을 고르라고 하라면 문재인이다

(이 둘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던가 잠시 생각을 해보았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유시민...선거통이 속시원하기는 하겠는데, 그 놈의 안티가.)

나는 꼼수다, 유시민의 따듯한 라디오, 이해찬의 정석정치와 같은 방송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일단 쫄지 말라는 게 있지만, 그게 꼭 전부는 아니다. 쏠쏠한 재미 중에 하나는 정치인들이 (직접 출연해서 말하거나, 혹은 누군가 말을 전하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랑 같은 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일단 남의 편이랑 싸우는 건 언제나 볼 수 있고, 남의 편 정치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자기 편에 대한 평가는 듣기가 쉽지 않다.

범야권 인사들이나 김어준 같은 평론가들의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한 평가는 (내가 보기에는) 대동소이하다. 다른 점은 문재인이 '정통성' 측면에서 좀 더 강점이 있고, 안철수가 '대중성' 측면에서 좀 더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점은, 문재인이 최근들어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 전까지를 놓고 보자면 '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정치 신인이라는 점이다.

물론 문재인이 좀 더 정치에 가까운 곳에 살아오기는 했다. 얼마 전에 (아마도) 한나라당 누군가가 비서실장 경력으로 정치적 능력 혹은 경력을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당에서 싸워도 보고, 선거에도 나가 보고, 선출직도 되어 보는게 '정치 경력'에 걸맞는 일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지만 (해야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에 아무런 기술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난 문재인의 이런 '정치경력이라고 하기에 조금 무엇한' 경력 때문에 문재인을 선택했다. 그래도 문재인이 국가 운영을 지켜보았다.

사실 정치적 경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참여정부의 실패 때문이다. 보수언론으로부터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보수언론의 관점과 반대의 입장에서) 가슴 아프게도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은 빼았겼지만 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거대 보수 세력을 대통령과 일부의 추종자들이 일거에 개혁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적어도 노회한 관료 집단에 휘둘려 다녔다는 점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 때 부동산에 발목이 잡혔고, 지금은 FTA의 원죄를 짊어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들은 이야기인데, 참여정부 당시에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대략 비서관쯤 되는 사람에게 지인이 물어 봤다고 한다.
"부동산은 왜 실패한거냐?"
"관료들한테 둘러 먹은거지..(속았다는 말)"

노무현이 비록 대통령 후보시절에 민주당 내에 탄탄한 기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김대중처럼 '준비된 대통령'도 아니었다. 하지만 20여년을 시민사회와 원내, 원외에서 활동했고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낸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장악하기에  힘이 부쳤다고 생각한다.

과연 오늘의 안철수는 이런 난관을 헤쳐나갈 정치적인 기술이 있을까. 물론 안철수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인물이다. 정치적인 기술이나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세' 이외에 많은 가치를 담고 있다. 시대에 따라 정치적인 기술이 좀 더 중요한 시기가 있고, 인물이 좀 더 중요한 시기가 있고, 정책이 좀 더 중요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기술과 경험에 좀 더 가중치를 두고 싶다. 개혁세력이 어떻게 휘둘렸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혈혈단신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년이 지난 후에 대통령이 된다면, 과연 그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다음 정권에서는 검찰 개혁과 같이 관료세력과 부딛힐 일이 많다. 요즘 검찰이 한나라당 보다도 더 열심히 정치에 골몰하는 것은 정권교체가 가까워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낙선하더라도 당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권력을 나눠 가질 사람들이다. 선거도 4년 후에 돌아온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라면 정권교체 후에 검찰은 풍비박산이 날거라고 (나야된다고) 보는게 맞다. 참여정부 때와 같은 검찰개혁은 통하지 않았다는게 증명되었다. (누군가는 진보가 안되는게 모질지 못해서라고 하던데, 5년 동안 많이 모질어 졌을 거다.) 그래서 검찰은 최선을 다해서 정권교체를 훼방 놓을 것이고, 그 후에도 검찰개혁에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이다. 이럴 때, 이 거대한 싸움을 헤쳐나갈 사람으로 문재인이 더 어울려 보인다.

누군가가 '정치신인에게 정치적 기술 운운하며 부적절함을 지적하면 신인은 정치하지 말라는 소리냐'고 따지면, 사실 나도 뭐라고 대답하지가 쉽지 않다. 안철수는 총선을 통해 정치적 역량을 닦을 수도 있고, 정권이 바뀐 후 장관급의 위치에서 실무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앞에 놓인 싸움의 질과 양을 생각해볼 때, 문재인의 손을 들어 본다.

노무현의 실패를 거울삼아, 노무현의 분신을 지지하는 이 아이러니는 뭔가.

by terabass | 2011/12/01 06:16 | 메모 | 트랙백 | 덧글(0)

 

'돈 되면 뭐든지'…중국 짝퉁 '왕실결혼' 화제

얼마전 뉴스 기사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09686

이른바 짝퉁 왕실결혼식.
총 비용은 우리 돈 820만 원 정도였습니다.
(중략)
돈이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모방하는 중국인들, 하지만 이런 짝퉁 상술이 중국 상품의 품질과 이미지를 훼손하는 만큼 이번엔 엄격하게 단속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강남의 한 하우스웨딩 업체 웹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뭐가 다른거지?
800만원이면 짝퉁이고. 8천만원이면 아닌가?
이건 중국사람들이 짝퉁을 좋아하는 문제가 아니고, 동아시아의 서구지향성에 대한 문제이지 않나?

by terabass | 2011/06/02 18:07 | 메모 | 트랙백 | 덧글(3)

 

'한컴리드온' 인터페이스에 나타난 메타포 혹은 구(舊) 미디어의 유산

'한컴리드온'이라는 안드로이드용 전차잭 뷰어 앱이 출시되었다. 신문기사에서 본 사진 한 장에서 질문이 시작되었다.


'설마 화면을 진짜 저렇게 책 모양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디자인한 건가? 그럴리가.'
'그럴리가'라는 질문은 중세 성경의 필사본에 붙은 요란하고 정신사나워 보이는 장식을 전자책에 덧붙였을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한번 더 보고 나서 저 화면은 그냥 바탕화면에 놓이는 앱의 아이콘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다음 질문은.

'그럼 진짜 책이 보이는 화면은 어떨까?'

사진에서 보듯이 흰 바탕의 검은 글자이다. 
하지만, 조금 전 내 의문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듯이 책장을 넘지는 애니메이션 효과가 있었다. 


예전에 '서양사입문'이라는 듣던 때에 기말 과제 주제를 '인쇄술의 발달이 프랑스 혁명에 끼친 영향'로 정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자료를 찾아본 결과 인쇄술과 시민의식 사이의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선대의 학자들이 명확하게 규명을 해놓았지만), 그냥 '연관이 있다'는 식의 보고서를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 그 시절에 인쇄술의 발달로 이전 시대보다 책이 많아졌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야설' 같은 책이 많이 읽혀졌다는데, 책을 빌려 주는 사람들이 마차에 싣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면서 빌려 줬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여담이고. 당시 인쇄술의 발달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에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초기 책의 형태이다. 이 '초기의 책'이라는 것이 필사본이었는지, 아니면 초기 인쇄물이었는지 지금 정확하게 기억는 아지 않는데 아마도 인쇄술 이전의 필사본인 것 같다.

초기의 책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글자의 모양이나 편집이 아주 독특했다는 점이다. 책이 없던 시절에는 모든 것이 구전 되었다. 아마도 정형화된 지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다 보면 운율이 생기거나 특정한 톤이 생기는 것 같은데 구구단도 그 중 하나이지 싶다. 그래서 초기의 책은 구어(口語)의 운율과 강세가 글자에 표현이 되어 있다. (정말 그 때 본 책의 사진을 찾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예를 들어서, 'Imagine there's no heaven' 같은 문구가 그 당시의 책에 어떤 운율로 쓰여 있다면 필사가 이렇게 되있는 거다.
(오래된 기억에 따른 예시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IMagine tHere'S no HEaVen.

음성에서 문자로 미디어는 바뀌었지만, 미디어의 변화보다 사람의 행동이 서서희 변하면서 일정한 시간이 흐를 때까지는 이전 미디어의 특징이 새로운 미디어에 덧입혀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컴리드온'의 화면을 보고 든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미디어는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아직 아날로그의 조작방식을 흉내내는 것은 초기 필사본과 같은 이유이지 않나. 결국 이것은 사라질 운명은 아닌가.

이런 '책장넘김' 인터페이스는 이전에도 온라인 카탈로그 같은 곳에 종종 쓰이던 것이다. 자동차 회사 웹사이트나 홈쇼핑 사이트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인터페이스의 존재 때문에 한컴리드온이 굳이 칭찬을 받거나 비난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궁금한 것은 이런 인터페이스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메타포가 가장 앞선 선택지가 되어 있지만, 이것이 메타포가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이것은 새로운 것을 디자인할 때, 익숙한 것을 매개체로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예전 것을 새롭게 디자인하면서 모양까지 똑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인터페이스는 옛 미디어를 사용하던 습관을 새로운 미디어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고 아마도 사라질 운명일 것이다. 한가지 걱정아닌 걱정은 이런 인터페이스를 '아날로그적 감성'의 표현이라고 보거나, 혹은 '그래픽 데코레이션'이라고 생각해서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것이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일단 '책장넘김' 방식은 불편하다. 종이책의 인터페이스에서 책장의 역할은 물리적인 인덱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까 본데를 찾으려면 '대략 이쯤이지'라고 생각하고 책장을 열면 된다. 책장의 감성이라는게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 지난날을 돌아 보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 원래부터 있던것이 아니다. (전영록이 그 때는 아이돌이었다.) 하지만, '책장넘김' 방식의 전자책이나 카탈로그는 그 감성을 위해서 사용성을 양보한 것인데, 부수적인 수입을 위해서 본업을 포기했다는 느낌이다.

또 이것이 '장식'이라면, 10여년 전의 번쩍번쩍하던 웹사이트와 비슷한 수준의 키치(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으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라는 것은 실제 아날로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껴야 되는 것이다. 그것을 흉내내면서 느끼는 것은 사실 아날로그의 감성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미련'이다. (전영록이 나오면 전영록이 좋다기 보다는 그 당시 내 모습이 떠오르는 거다.) 아날로그 감성이 정말 좋다면 종이책을 읽으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출시된 Fuji X100도 너무나 가지고 싶은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나에게는 진짜 아날로그 카메라가 있으니까.





글을 쓰면서 Amazon Kindle을 찾아보았다. Kindle의 인터페이스는 보다 단순하다. 굳이 지나간 '감성'이나 '장식' 때문에 사용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디지털은 디지털만의 감성이 있고, 우리는 20년쯤 후에 그 감성을 생각하며 추억에 젖을 것이며, 그 감성의 한 가운데에 '디지털의 편리함'이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 
지금은 CD가 감성이지만, 20년 전에는 미디어의 첨단이었다. 

by terabass | 2011/05/18 22:16 | 메모 | 트랙백 | 덧글(3)

 

[독후감] 자금성의 황혼(Twilight in the Forbidden City) - 레지널드 존스턴

자금성의 황혼(Twilight in the Forbidden City) - 레지널드 존스턴/김성배 옮김. 돌배게


마지막 황제 부의
뉴욕으로 출장 가는 공항에서 출발 10여분을 남기고 이 책을 고른건, 아마도 지난 중에 대만에서 '중정(장개석의 호) 기념관'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중국 근대사의 맛을 잠깐 보았기 때문)이 반,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마지막 황제'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 반이었다. '정원사가 되어 버린 황제'는 비극적이면서도 선정적이다. 사실 뉴욕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영화 한 편 보지 않고 한숨에 읽어버린 건, 책의 맨 뒤에 (저자 존스턴이 아니고 - 왜냐하면 그는 1938년에 죽었기 때문에) 역자나 혹은 다른 사람이 덧붙인 퇴임 후의 부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엄청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본문 600 페이지도 아주 흥미롭지만.

1898-1931
물론, 이 책은 존스턴 원저의 완역판으로써 역사 서문을 제외하고는 오직 존스턴의 본문과 주석만을 포함하고 있다. (역자의 주와 이해에 도움이 되는 도표, 색인 등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 기대를 애시당초에 쓸데 없는 것이었고, 사실 이 부분이 이 책이 갖는 아주 흥미로운 점이라고 하겠다.

존스턴은 1898년(광서제 시기 - 부의의 선왕. 아버지는 아니다) 시기에서 시작하여 1931년, 부의가 만주국의 집정이 되어 떠나는 장면에서 책을 끝난다. 이 책은 1934년에 출판되었고, 존스턴은 1938년에 64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지금까지 읽고 보았던 20세기 초반에 대한 역사 기록이 그 시기를 '2차 세계대전(1939-1945년)까지의 시기'로 정의하고, 2차 대전 이후에 분명해진(좌측의 관점이던, 우측의 관점이던) 선악의 구분을 따랐던 반면, 1931년 이 영국인이 쓴 책은 아직 오늘과 같은 선악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저자는 일본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데(이 때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다), 존스턴이 살아서 2차 세계대전을 보았더라도 같은 평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황제의 충성스런 신하
역자의 서문에 이런 부분이 있다

존스턴의 사상적 성향이나 역사적 관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손문을 비롯한 혁명파(공화파)에 대한 시니컬한 논조와 강유위나 정효서와 같은 보황파에 보내는 따뜻한 눈길을 보면, 저자의 사상적 좌표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참 책을 보다가 '이 사람 왜 이렇게 손문(책에서는 손문의 호를 사용하여 손일선으로 일컫는다) 등에 대해서 삐딱하지'라는 생각이 떠올라 앞으로 돌아가 다시 찾아보았던 부분이다. 존스턴은 말년에 홀로 지내며 매일 집에 만주국(부의가 집정이 되었다가 다시 황제가 되었던 일본 괴뢰국) 국기를 게양했다고 할 정도로 황제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입헌군주국(영국) 출신이며, 제국의 식민지 관리였던 저자가 중국의 황제와 군주제에 대해 갖는 충성심과 태도는 아주 흥미롭다. 근대 민주주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주제를 옹호하고 있다. 또, 그는 중국 내 영국 조차지('위해위'라는 곳)의 행정 장관이었다. 자신이 침략한 나라의 황제에 대해 충성을 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는 손문 등의 공화파를 '급진파'로 일컫고, 종종 당시 급진적이었던 공산주의 세력과도 한 묶음으로 생각한다. 그가 황제의 편에 선 이유는 '중국은 안정이 필요하고, 공화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중국 국민들에게 공화제는 혼란만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안정이 최우선이라면, 그것을 가져올 것은 차라리 황제라는 말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참 당황스러운 대목이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지만, 종종 색깔론이 뒤섞인 저자의 주장은 과연 그가 비판하는 것이 '공화제'였는지, '중국의 혼란'이었는지, '반황파(反皇派)'였는지 헷갈리게 한다.

중국 그리고 낭만
존스턴이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낭만적이고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고 보여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존스턴의 시대와 장소를 고려할 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그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는 황제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청나라 황실의 전통적인 복식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대신 '양복에 모닝코트'를 입고 참석한 공화국 인사들(공화국이 수립되고 황제는 예우만을 받던 시기이다)에 대해 '이 아름다운 자기 나라의 의복을 놔두고, 서양식을 쫒아 입고 온 사람들'이라는 시선을 보낸다.

그들은 모두 제국에서 유행하던 관복과 조복으로 정장하고 있었다. 공화국의 문관과 무관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그들의 예복-서양식 군복이나 모닝코드-은 예술적으로 색채가 어우러져 화려한 구시대 만주 관리들의 모피나 비단 예복과 비교하면 차마 못 봐줄 지경이었다.

사실 그 자신도 양복에 모닝코트 차림이었는데, 본인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여겼던 청나라 복식을 차려입지 않은 이유는 좀 궁색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이 청나라 옷을 입어도 그에 맞는 예법(절하는 방법 등)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을 통털어서 저자가 중국식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 궁금한 점이다.

명나라의 후손, 주욱훈
중국이나 군주제에 대한 '낭만적' 혹은 '이상적'인 저자의 태도는 개인적인 취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존스턴은 황제의 최측근으로 몇몇 사람들은 황제에게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다. 주욱훈(朱煜勳)이라는 사람은 '연은(延恩)'이라는 칭호를 가진 무명의 귀족인데, 그의 조상은 명나라 황실이다. 명나라(황제의 성이 주씨)가 망한 후에, 청나라에서는 명나라에 대한 아량으로 명나라 후손에서 '연은'이라는 칭호를 주고 그 답례로 일년에 두차례 명나라 황제에게 제사를 지낼 것을 명하는데, 주욱훈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수백년을 내려온 가문의 대표였다. 그는 일년에 두차례 제사를 지내면서 황제에게 경비를 지급받고 그에 대해 매번 보고를 하게 되어 있었다. 존스턴은 그 보고 문서를 보고 황제에게 한 번 만나볼 것을 권유한 것이다.

존스턴의 추천으로 황제를 알연하고 바로 존스턴과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말이 귀족이었지 사실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었다. 황제를 만나기 위해 입은 예복은 빌린 것이었고, 집이 허름해서 존스턴이 답례로 방문하겠다는 것을 한사코 말린다. 이 사람에 대한 존스턴의 인상은 '가난하지만 젠틀맨이며, 조상에게 물려 받은 연은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인물'이었는데, 사실 존스턴의 평가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1912년 공화국이 출범했을 때, 손일선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프록코트를 입고 중산모를 쓰고서) 명나라 초대 황제의 능묘에 정식으로 참배하고 그 존엄한 영령 앞에 이민족이 만주 약탈자에게 빼앗겼던 옥좌를 되찾았으며, 중국을 다시 한족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기쁘게 보고했다......그러나 그 당시나 그 후에도 공화국 당국은 명 황실의 현존 후예들의 행복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연은후에 대해서도 존경이나 호의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그의 극빈 상황을 구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또 그의 작위마저 공화국은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만주 약탈자란 원래 만주 왕조인 청나라를 의미한다. 결국, 공화국은 한족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한 것은 없고, 오히려 만주족이지만 한족(명나라의 후예들)을 챙겨준 것은 황제이니 누가 더 옳으냐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민족주의에 과도하기 기반한 민주주의 세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시당초 손문(손일선)의 행동 자체가 문제였다고 보지만, 존스턴은 그 문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지 않다.

낭만이 낳은 걸작, 훌륭한 번역
앞선 주제들은 존스턴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그의 '독특한' 관점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히려 존스턴의 그런 성향이 '자금성의 황혼'과 같은 명작을 낳게한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좀 더 딱딱한 사람이었다면, '삼국지연의'가 아니라 '정사 삼국지' 같은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는 책에서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든다. 공자, 맹자, 사기와 같은 고전부터 여러 시선들의 시를 참조하기도 하고, 유럽의 역사적인 사건과 문학 작품에 비유하여 글을 이어가기도 한다. 문장은 유려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정확하다. 조금이라도 독자들이 헷갈릴만한 부분에는 어김없이 그것을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문장이 뒤따른다. 그러면서도 글이 지겹지 않다.

이것은 또한 역자인 김성배 선생의 훌륭한 능력이라고 보인다. 중국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영문으로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 동서양의 고전을 참조하는 어려움, 중국의 역사, 인물, 지명을 파악해야하는 어려움 등을 모두 탁월한 번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머니볼'을 읽고 역자였던 윤동구 선생(이 분은 진짜 학교 선생님이다)의 번역이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또 한번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자금성에 가기 전에
이 책은 자금성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아, 엄청 크구나'라는 감탄사를 '아, 자금성이 이런 곳이구나'라는 감탄사로 바꾸어 준다. 나도 수년 전에 자금성에 가본적이 있지만, 사실 그 크기를 뺀다면 딱히 기억에 남는 구석이 없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그 때 이 책을 보고 갔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의 말고도 많은 황제가 지나갔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역사가 이루어진 곳이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도 될 것 같다. 아직 채 100년도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역사를 자금성 한 가운데서 느껴보고 싶다면, 떠나기 전에 읽어볼 것을 권한다. 637페이지의 지도가 도움이 될거다.

by terabass | 2011/04/27 13:18 | 메모 | 트랙백 | 덧글(0)

 

출장일지

총출장횟수
22회 (워크샵 2회 제외)

총탑승횟수(Boading Pass수)
66회

총출장거리
256,928miles(약 411,000km)

총출장길이
박(泊)기준: 171박
날짜기준: 193일

평균
2006.1 ~ 2011.6 총 66개월 기준
출장횟수: 4회/년
출장거리: 46,714miles/년
출장길이: 31.1박/년

출장국가 및 도시수
(출장 오가는 길에 묵은 국가/도시 포함)
13개국 21개 도시

연(延)출장국가 및 연(延)도시수
(출장 오가는 길에 묵은 국가/도시 포함)
32개국 36개 도시

가장 많이간 국가
1등 미국 8회
2등 영국 6회
3등 중국, 독일 4회

가장 많이간 도시
1등 런던 6회
2등 LA 5회

가장 먼 도시
상파울로 11,801miles, 총 32시간
인천->애틀란타 14시간, 애틀란타 9시간 대기, 애틀란타->상파울로 9시간

가장 가까운 도시
상해 510miles, 1시간
하지만 상해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인천->뉴욕->런던->상해)

가장 험한 도시
라고스(나이지리아)

전체 출장 일정
1. 2006.08.13 - 08.19 미국(LA): 6박 7일. 11,936miles
2. 2007.04.13 - 04.23 일본(동경, 오사카): 10박 11일. 1,513miles
3. 2007.06.29 - 07.08 중국(북경), 인도(델리): 9박 10일. 5,827miles
4. 2007.11.26 - 11.28 스페인(마드리드): 2박 3일. 12,412miles
5. 2008.02.14 - 02.27 나이지리아(라고스)  + 영국(런던)[휴가]: 14박 15일. 17,238miles
6. 2008.04.13 - 04.18 말레이시아(쿠알라룸프르): 5박 6일. 5,718miles
7. 2008.05.28 - 06.06 미국(LA, 뉴욕): 9박 10일. 15,466miles
8. 2008.07.08 - 07.14 영국(런던): 6박 7일. 11,304miles
9. 2008.08.11 - 08.15 미국(LA): 4박 5일. 11,936miles
10. 2009.04.07 - 04.12 영국(런던): 5박 6일. 11,304miles
11. 2009.07.04 - 07.21 브라질(상파울로) + 미국(워싱턴D.C., LA)[휴가]: 16박 17일. 25,082miles
12. 2009.08.13 - 08.23 미국(뉴욕), 영국(런던), 중국(상해): 10박 11일. 16,622miles
13. 2010.01.07 - 01.16 영국(런던), 이태리(밀라노), 독일(베를린): 9박 10일. 12,232miles
14. 2010.02.16 - 02.23 미국(LA), 프랑스(파리): 7박 8일, 17,262miles: 7박 8일. 17,226miles 
15. 2010.04.28 - 05.02 독일(베를린): 4박 5일. 11,530 miles
16. 2010.08.07 - 08.12 이집트(카이로): 5박 6일. 11,195miles (인천-타슈켄트-카이로-이스탄불-인천)
17. 2010.10.17 - 10.30 중국(북경, 광주): 13박 14일. 3,020miles (인천-북경-광주-인천)
18. 2011.01.25 - 02.04 중국(북경), 영국(런던): 9박 10일. 12,444miles (인천-북경-인천-런던-인천)
19. 2011.02.13 - 02.23 미국(시카고), 독일(뮌헨): 10박 11일. 16.599miles (인천-시카고-뮌헨-프랑크푸르트-인천)
20. 2011.04.11 - 2011.04.13 대만(타이페이): 3박 4일. 1,840miles
21. 2011.04.17 - 04.23 미국(뉴욕): 6박 7일. 13,764miles
22. 2011.06.17 - 06.26 독일(프랑크프루트): 9박 10일. 10,720miles

by terabass | 2011/04/07 16:38 | 여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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